게으른 완벽주의자
나는 아직 흔히 말하는 게으른 완벽주의자다.
후회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해서 어설프게 시도했다가 실패하면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고 볼펜 한 자루, 노트 한 권을 사더라도 한참을 알아보고 사는 편이다.
그래서 무엇인가를 시작할 때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느끼면 시작이 어렵다.
학교에 다닐 때도 미루고 미루다 시험 직전에 벼락치기를 하고, 과제 마감 기한 직전 제출 버튼을 누르곤 했다.
어쩌다 과제를 미리 끝냈을 때는, 마감 기한까지 매일 실수한 내용은 없는지, 추가 또는 수정 해야 할 내용은 없는지 확인하다가 결국 마감 기한 직전 제출 버튼을 눌렀다.
과제에 소요되는 시간을 3일로 예상했다면 미루다 마감 3일 전에 맞춰서 시작하는 내 자신에게 자기혐오를 느낀 적도 있다.
완벽을 기다리다 보면 아예 시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두 가지 방식을 시도했고, 작은 변화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상황에 나를 던지기
예전에 누군가로부터 본인은 자신을 도전적인 상황에 고의로 밀어 넣는 것을 의도한다고 들은 적이 있다.
나와는 정반대 생각에, ‘시작하지 못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낫다’라는 생각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또 누군가는 본인의 별명을 ‘2주 뒤에 뵙겠습니다’라고 소개한다.
새로운 지식을 발견하면 강의나 일정을 2주 뒤에 잡아버리면 2주 후에는 상황에 맞춰 본인이 소화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최근에도 새로운 회사 동료로부터 상황에 나를 던지고 해내는 것을 좋아한다고 얘기를 나눴다.
이 정도면 ‘나를 상황에 던져 봐도 좋을 것 같다’ 생각이 들어 예전부터 계획만 세웠던 블로그를 만들기 위해 회사 동료분들과 함께하는 블로그 글쓰기 스터디에 참여하고 싶다고 하고 시작해 버렸다.
블로그를 만들지도 않은 상태였지만, 나를 상황에 던지자 어느새 블로그 플랫폼을 알아보고 개설한 뒤 그 과정을 첫 포스팅으로 작성했다.
상황에 나를 던지지 않았다면 몇 개월을 더 미루다가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환경을 먼저 만들어 놓으니 자연스럽게 실행하게 되었다.
러닝도 마찬가지였다. 여름엔 덥다고 겨울엔 춥다고 시작을 미루던 차에 마라톤 10km도 신청해 버렸다.
일정이 정해지자 자연스럽게 러닝을 시작하고, 필요한 러닝화를 구매했다.
계획했던 것보다는 훨씬 적었지만, 일주일에 1~2번은 5km 이상 뛰면서 몇 년 만에 숨이 차도록 달려봤다.
완주를 목표로 1시간 20분~30분 정도 예상했지만, 예상보다 훨씬 좋은 기록으로 10km를 완주할 수 있었다.
2초만 빨리 들어왔더라면..
앞으로도 마라톤을 나가진 않더라도 건강을 위해 꾸준히 러닝을 실천할 계획이다.
실패해도 괜찮다. 시작하지 않는 것보다 실패하더라도 해보는 것이 낫다.
때로는 상황에 나를 던지고 일단 시작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퀘스트 완수하기
목표를 세우는 것은 쉽지만, 실행하는 것은 어렵다.
우연히 삶을 바라보는 태도 - 인생을 게임처럼 살아보기라는 글을 보고 ‘내 삶에도 퀘스트와 보상을 적용해 보면 재밌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표를 단순히 해야 할 일로 두기보다는, 게임 속 퀘스트처럼 설정하고 보상을 주는 방식을 시도 해봤다.
평소 가지고 싶은 물건이 생기면 한참을 고민하다가 구매해야 할 합리적인 이유를 만들어(?) 스스로를 설득한 후 구매하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사고 싶은 물건이 생기면 구매해야할 이유를 찾기보다 이를 얻기 위한 퀘스트를 설정하고 달성하면 보상을 받는 방식을 적용해 보고 있다.
ebook 리더기를 사고 싶다면 책 읽는 습관을 먼저 들이는 것이 구매 시 효과가 좋은 것처럼 퀘스트와 보상이 비슷한 성격을 가지는 것도 달성하는 것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생성한 퀘스트 중 일부는 다음과 같다.
퀘스트 목록
- 한 달에 책 2권 읽기
- 🎁 해리포터 ebook 전 집
- 러닝 시작하기, 일상화로 먼저 뛰어보기
- 🎁 러닝화
- 다이어트(-10kg), 건강한 몸 만들기
- 🎁 허먼밀러 에어론 의자
- 개발에 다시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기
- 🎁 칼디짓 ts4
- 퇴근 후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 늘리기
- 🎁 c타입 매직키보드, 트랙패드
- 2주에 1회 블로그 포스팅
- 🎁 글쓰기 능력, 사고력, 표현력 향상
- 하루에 감사했던 일 3가지 기록하기
- 🎁 삶의 만족도 향상, 긍정적인 마인드
- 주변 사람들에게 먼저 대화하는 연습하기
- 🎁관계 유지 및 소통 능력 향상
‘그냥 소비욕 가득한 사람의 합리화 목록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외재적 보상이 많지만, 뭐라도 하고 사는 게 어디야..
모르겠고 허먼밀러 빨리 사고 싶다
외재적 보상은 너무나도 달콤하지만, 단순히 목표를 달성하고 물건을 얻는 것을 넘어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내재적 보상도 매우 중요하다.
적절한 보상이 목표 달성의 동기가 된다면, 미루는 습관을 줄이고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지속 가능한 변화 만들기
변화는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이를 지속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완벽한 준비를 기다리지 않고 시작하는 것은 변화의 첫걸음이지만, 그 변화를 지속할 방법이 없다면 결국 원래 상태로 돌아가게 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적절한 보상을 통한 동기부여를 유지하며 꾸준히 지속 가능한 변화를 만들어 낸다면 조금씩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갈 것만 같다.